김혁일 시선 13

가로등 



안개짙은 날

캡눌러쓴 저 남자

누굴보내고 얼굴 우울하나


오라고

돌아오라고

밤새껏길목을 밝혔는데


그러나떠난 임은 돌아오지 않고

날이밝아 훤한 길

진꽃잎만 낭자하네



사는맛 


1


고기탐하던 강아지

날오이한 토막

얻어


문턱에앉아

싱숭생숭


그래도누가 앗을까 곁눈질 힐끔힐끔

침을섞어 아작아작 열심히 먹는 시늉


2


사는것이 무슨 맛이더냐

강아지먹는 날오이 맛이더냐


그거야내가 알까, 살면서

나는꼬리나 열심히 흔들 일



영탄곡 


여자야

노래부르는 여자야

들숨날숨이 그대로 潮汐이 되는 여자야

밀물이었다가썰물이었다가

그렇게岸을 못살게 하는 여자야

산은말을 못해

저렇게목이 꽉 메어서 섰구나

너의발치에 무너지려다 말고

저만큼물러나 섰구나


여자야

노래부르는 여자야

그렇게어깨를 흔들지 말어라

네가어깨를 흔들면 산은 마음이 흔들린다

마음이흔들려도

오도가도 못하는 산은

푸른능선이 되어 엎드린다

엎드려끙끙 몸을 뒤튼다


여자야

영탄곡부르는 여자야

부르려거든혼자서만 불러라

둘이서부르지 말어라

너희둘의 고운 목소리가 어우러지면

孤峰은더욱 외롭구나

외로워서

주저앉아엉엉 울고푸구나

울어서라도물이 되어

너에게로흘러가고 싶구나




요람  

 


어느쪽을돌아다보아도

팔을벌린 빈 들녘

어둠이한아름

먼님 풍성한 앞가슴 만큼이구나

하늘엔초승달

누구의실눈 같고

바람보다가벼운 걸음으로

망사쓴 아랍의 무희

이제산발을 타고 내려오신다

나보고별을 보라며

꼭껴안으신다

잔등을다독여 주신다

별이야어느  밤인들 나의 왠쑤가 아니었던가

샛별눈을짝사랑하는 나무는

별하늘우러러팔벌려

오늘도선채잠들거고

이런밤은누구의 품에

나도新月처럼 기대

눈감고

태아로돌아가고 싶구나

아, 어둠이 충만한 허공이여

출렁이는양수여

자궁, 요람이여



 길을 쓸고  


잎이 지어

잎을 쓰니

또 꽃이 지고


꽃이 지어

꽃을 쓰니

이번엔 새들이 날아 내리고


이제 우우 새들마저 쫓아버리면

저 고운 가리맛길로

이번엔 오려나

고운 이


팔랑 팔랑 나비처럼

오는 듯 머무는 듯

기어이 오려나

임이 오려나



가야금  


가야금열두줄

한줄은소리하는조선여자고운목에

푸른핏줄로일어서고


가야금열두줄

남은열한줄은

줄줄이다이가슴에메워지고


뚱기면가야금이아니고나그네가슴이오

뚱기면명주끈이아니고저여자의설움이오


막걸리, 막걸리 주소

이소리에한잔아니하면

해가못넘어가오


막걸리, 막걸리 조소

막걸리한잔

두잔에기어이 달이 뜨고


둥기당둥기당당

조선남자소나무가되어일어서오

조선여자학이되어춤을추오




조우     



요요한연꽃 아래

등푸른고기가 보였다


시치미뚝 떼고 막대인 척

엉큼했다, 놈은


시치미뚝 떼고 모르는 척

엉큼했다, 나도


고요한정적

팽팽한신경전……


웃긴다. 막대맞잖아

다리가저려, 끝내는내가 먼저 일어섰다


찰나, 혼비백산

놈은순식간에 줄행랑을 놓았다


기실엉큼한 것이 아니었다

실은잠깐기절하고 있었다




길에는 길이 가고 있었다

 


여기서부터 저 하늘 끝까지

끝까지 아무도 없는

길을


그래서

그래서 그것이 나의 길이라 하였다


아니, 아니지

구름이 무성하였다

그리고 순례 가는 하얀 바람이 있었다


눈 감고 팔 벌리고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저 길을 활주하면

나는 하늘의 품에 안길 수 있을까


아니, 배낭 하나는 버릴 수 없지야

수첩 하나는 버릴 수 없지야

나는 이 땅의아들

어쩔 수 없이

나는 스스로 자갈을 문 야생마 한 필이어야 하겠지


하늘 끝까지

끝까지 아무도 없는 길이니

툭툭 말발굽 던져

심심한 사막의

이 뜨거운 한낮의 정적이라도 깨뜨려야지


사막을 질러 오아시스에 닿는

나는 스스로 길이어야 하고

홀로일지라도 씩씩한

때로는 길 위의 힘찬 행진곡이어야 하겟지


그래서 길이라 하였다

길에는 길이 가고 있었다




자갈     

 

 

냉랭한 자갈은

실은 따뜻한 가슴이었지


투명 속의 은신

여울 속의 숨죽임


천 년의 수마석은

실은 천 년을 비상(飛翔)하는 꿈이었지


흐르는 물과 세월과

부딪치며

얼굴과 마음을

다듬으며


차가운 자갈은

실은 힘겨운 알까기 중이였지


눈 꼭 감고

주먹 꼭 쥐고, 자갈은

실은 작은 새의 할딱이는 가슴이었지



부름    



저물녘 누구의 부름

나그네 잔등에 부딪쳐


산에 들에 메아리로

메아리로 흩어지는 듯 하더니


바람 타고 거듭

이번엔 저 앞산에 가서 부딪쳐


부딪쳐 돌아오며

이번엔 나그네 앞가슴 적중하는


들리네, 아, 이제야 들리네

소싯적 동구밖엄마의 부름


혁일아

저녁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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