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화 차이 때문에 오해를 받은 일이 있습니까?
2. 사람과 사람의 거리는 문화마다 다르다고 생각합니까?
시선의 차이
진중권
사람과 사람의 거리는 문화마다 다르다. 가령 동양인과 서양인이 만나 서로 얘기를 한다면,어색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언젠가 일본에 계신 장인어른이 독일을 방문하여 독일인들과 인사를 나눌 때의 일이다. 장인어른이 친밀감을 표하기 위해 바짝 다가 서자, 독일 사람들은 난처한1) 표정을 지으며 자꾸 뒤로 발을 뺀다. 대화를 나눌 때에 쾌적하게 느끼는 거리가 서로 다른 것이다. 미국인과 멕시코 사람들 사이에도 종종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들었다.
문화의 차이가 거리의 차이로 표현되는 경우가 있다.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배낭여행 온 한국의 여성들이 다정하게 손을 잡고 다니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한국에서는 서로 친구 사이로 봐주겠지만, 유럽에서 그렇게 하고 다니는 것은 ‘우리는 레즈비언2)’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한국에서는 남자들끼리 술 먹고 팔짱을 끼거나 어깨동무를 하고 다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서구에서 그렇게 하고 다니는 남자들은 보통 ‘게이’로 인식된다.
한국의 여행객들이 여행을 하면서 흔히 실수하는 것이 있다. 유모차 탄 서양의 아기가 귀엽다고 다가가서 미소를 짓거나 머리를 쓰다듬는 것이다. 한국에서라면 제 아기 예뻐해 준다고 부모가 좋아하겠지만, 서양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이 제 아기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을 불쾌해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동양인의 행동을 그저 문화 차이로 보아 넘겨 4) 주는 이들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서구인은 낯선 이가 제 아이에게 접근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개인주의가 발달한 서구인은 되도록 타인과 거리를 유지하려고 한다.예를 들어 같은 아파트에 사는 누군가가 파티를 한다고 밤늦게 소음을 낸다면, 한국 사람의 경우 그냥 참아주거나 아니면 직접 찾아가서 조용히 해달라고 할 것아다. 독일에서 이럴 경우 초인종이 울리고 문을 열면 그 앞에 경찰이 서 있는 경우가 많다. 굳이 얼굴 맞대고 싫은 소리 하기 싫다는 뜻이리라. 여기에는 분명 편한 맛이 있겠지만 인간미는 좀 없다.
튀니지5) 에 갔을 때의 일이다. 어느 유적 앞에서 아랍인이 쓰는 머릿수건을 하나 사서 네 살 먹은 우리 아이의 머리에 씌워 주었다. 같은 방향으로 걷던 한 튀니지 여인이 미적미적 눈치를 보더니, 갑자기 허리를 굽혀 우리 아이의 볼에 뽀뽀를 하고 지나간다.우리는 타인이 이런 식으로 거리를 좁히고 들어오는 데서 외려6) 진한 인간미를 느낀다. 서구인은 좀 다른 모양이다. 여행 가이드북을 보면 "현지인이 다가와서 아이를 쓰다듬더라도 놀라지 말라” 는 투다.
이와 비슷한 체험을 가끔 한국에서도 한다. 어느 추운 겨울날 우리 아기를 끈에 달아 안고 기는데 할머니 한 분이 달려와서는 "애, 감기 걸리겠다.”며 내 점퍼의 지퍼를 올리신다. 얼떨결에 "애, 똑바로 기르라.”며 야단을 맞는데, 옆에서 아내가 키득거리며 웃는다. 일본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황당한7) 일인데, 자기는 이런 문화가 너무나 좋단다. 할머니니가 그랬지. 젊은 세대들은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을 게다. 이런 게 사라지는 건 아쉬운 일이다.
벤다이어그램8)으로 표현하자면, 서구에서 개인들 간의 관계는 서로 접한 원들로 표시할 수 있다. 서로 접한 원들은 하나의 점만을 공유한다.9)반면 공동체 정서가 강한 동양에서 원들은 종종 서로 겹쳐져 교집합을 이룬다. 이 겹쳐진 부분이 인간미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교집합에서 또한 남의 옷차림에 간섭을 하거나, 담배를 피우는 여자를 야단치거나, 트인10) 장소에서 애정을 표현하는 이들에게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낼 권리가 나오기도 한다.
남의 사생활에 대한 지나친 관심도 거기서 비롯된다. 유학 중에 아침 일찍 기숙사에서 조깅을 하는데, 아는 유학생의 방에서 그와 여자 친구가 나온다. "안녕.”하고 지나치려는데, 나를 불러 세운다. 얘기인즉, 여자 친구가 어제 두고 간 물건을 가지러 아침 일찍 들른 것일 뿐이란다. 그들이 그날 함께 잠을 잤든 안 잤든 내가 관심가질 만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내게 해명할11)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아마 그 교집합이 계속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한국에 살다 보면 주위에서 청하지도 않은 조언을 듣게 된다. "시집가라.”,”장가가라. “는 말은 기본이고, “애 하나 더 낳으라.” 는 얘기까지 듣는다. 어떻게 보면 끈끈한 ’인간적 애정’ 의 표현이지만, 다르게 보면 불필요한 ‘인격적 간섭’이다.이때 괜히 "남의 일에 간섭하지 말라.”고 했다가는, 곧바로 "우리가 남이냐?”는 볼멘소리12)를 듣게 된다. 그때마다 ‘남’이라는 낱말이 지니는 두 가지 상이한13) 의미를 설명해야 하는 피곤이 뒤따른다.
벤다이어그램의 교집합은 내가 내리는 결정에 주위 사람들이 개입할 권리를 의미하며, 내 삶에 주위 사람들이 왈가왈부할 자격을 의미하며, 내가 하는 행동을 주위 사람의 눈이 감시할 권한14) 을 의미한다.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내가 담에게 양도하는15) 이 권리만큼 남도 나에게 같은 양의 권리를 양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듣는 말. ‘세상, 너 혼자 사는 게 아니다.’ 라는 말은 바로 이 원칙의 단호한16) 표명 17) 이다.
1) 난처하다 : 难为情,尴尬
2) 레즈비언 (lesbian)
: 女同性恋
3) 게이 (gay) : 男同性恋
4) 넘기다 : 放过
5) 튀니지 (Republic
of Tunisia) : 突尼斯
6) 외려: “오히려 ( 反,倒 ) ” 的缩略语
7) 황당하다: 荒唐
8) 벤다이어그램 (Venn diagram) : 维恩图 (부분집합, 합집합, 교집합 따위 집합 사이의 연산을 쉽게 설명하기 위하여
나타낸 도식.)
9) 공유하다 : 共有
10) 트이다 : 开阔
11) 해명하다 : 说明,阐明
12) 볼멘소리:气话
13) 상이하다 : 不同
14) 권한 : 权限
15) 양도하다 : 转让
16) 단호하다:断然,坚决
17) 표명 : 表明
• 글쓴이 소개
진중권(1963~
서울대 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베 를린 자유대학에서 미학, 해석학 언어철학을 공부했으며, 귀국 뒤 시 사평론가이자 미 학자로 많은 활동을 했다. 주요 저서로 『춤추는 죽음』.,『미학 오디세이 1, 2 , 3』,『현대 미학강의』,『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외 다수가 있다.
한국인의관계맺기
한규석·최상진
사람들은 주로 누구와 친해지는가? 우리는 일상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지만 그들모두와친한관계를진행시키는것은아니다. 한번만난사람들이 계속관계 를 진행시키는지, 그 관계가 어느 정도로 진행되는지 하는 것은 다양한 요인들의 복합적인 결과이다. 누구와 주로 친해지며, 만나서 주로 무엇을 하는가에 있어서 문화권별로 홍미 있는 차이가 관찰되고 있다. 친교 관계의 진행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당사자들이 지니고 있는 능력이나 매력 따위의 개인적인 요소와 둘 사이의 연고라고 볼수 있다.
개인주의 문화권에서 친교 관계의 성립을 좌우하는 중요한 자산은 개인의 능력, 매력, 화술 따위이다. 사람들 간의 교제는 상대방이 지니고 있는 속성에 대한 자신 의 평가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쉽다. 상대가 매력적이거냐 유능하다는 인상을 갖게 되는 경우, 상대에 호감을 지니고 접근하며, 이러한 인상을 주고받으며 친소 관계 가 진행된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이 사귀어 볼 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남들에게 보일 필요가 있으며, 초면의 사람에게도 좋은 인상을 주도록 교육받는다. 이 러한 탓에 미국인들은 상대가 누구이건 가볍게 접근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친분 관계를 쌓 아 간다. 미국의 중소도시에서 공원을 거닐어 본 한국인들은, 건너편에서 오는 사람이 건네는 인사말이나 미소에 익숙하지 않아서 상대가 자선에게 특별한 호감을 지니고 있어서 그러나 하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에 대한 평가가 외모, 성격, 자질 등 비교적 외형적인 특성에 기초하여 이 루어지기 때문에, 이러한 특성이 열등한 사람의 경우 대인 관계에 큰 어려움을 느 끼므로 대인 관계 개선을 위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운용되고 있다. 이 러한 프로그램은 부끄러움을· 덜 타게 한다든가, 인상 관리를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거나, 혹은 화술을 훈련시키고 상대에 대한 감수성을 증진시키는 방법 등 관계의 테크닉 개발과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이댜 이와 관련해서 볼 때, 서양에서 발달한 사회심리학의 중요한 주제로 인상 평가와 그의 관리에 대한 것이 일찍 연 구되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의 관계 맺음은 당사자들의 작위적인 노력이나 매 력보다는 연줄과 인연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는다. 예부터 농경사회로 정착생활을 해 온우리 민족은마을밖의 사람들과우호적인 만남을가질 기회가적었으며. 거의 모든 만남이 같은 마을에 거주하는 사람들과의 지속적인 만남이었다. 따라서 낯선 사람들과의 교류 양식 대신에 같은 nHt 사람들과의 교류 양식이 발달하였다. 이 같은 오 랜 문화적 자취가 오늘날과 같은 산업 사회에도 나타나고 있어, 두 사람이 동향 또는 동 창이거나 같은 동네에 거주한다든가 하는 점들이 관계의 지속에 큰 영향을 준다. 이러한 요소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면 서로의 만남을 더욱 반갑게 여기고 인연이란 표현을 자 주 쓴다. 이같은 경향성은 우리 사회에서 처음 만나 알게 된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의 내 용을 살펴보면 보다 분명히 드러난다. 우리는 첫 대면의 경우 항상 둘 사이를 연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행위를 보인다. 학연, 혈연, 지연 등에 의한 인맥 동원이 활발히 이 루어지며, 이에 성공했을때 관계는 보다순조롭게 진전된다. 이 같은 현상은 공식적이건 비공식적이건 모든 만남에서 나타나며, 특히 무엇을 부탁하려는 사람은 이 인맥 동원이 지니는 힘을 잘알기에 더욱 애쓴다.
왜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는가? 이는 한국 사회에서는 아는 사이(우리)와 모르는 사이 (남)의 교류 양상이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타인을 ‘우리’ 또는 '그들’ ’ 로 구분하는데, 여기서 ‘그들 은 중립적인 존재라기보다는 경쟁적이거나 부정적 감정이 연루된 타인으로 간주되는 편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모르는 사이를 아는 사이로 전환시키 려 한다. 아는 사이에서는 양방이 우리라는 호칭을 시용-하며 정감을 느끼는 관계로의 진 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아는 사이와 모르는 사이에 대하여 각기 다른 행동 규범을 지니고 있다. 사회에서 우리의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정(情)의 형성을 부추기 는 방향으로 만남을 끌어가고 성원 개개인의 독자적인 행위보다는 우리라는 느낌을 강화 시키는 집단적인 행위를 당연시한다. 그 좋은 예는 음식점에서 주문은 따로 하지만 한가 운데 놓고 같이 덜어 먹으며, 계산도 각자 먹은만큼 나누어 내기보다는 어느 한두 사람이 무든 계산을 하는 행태에서 볼 수 있다. 또한 여럿이 어울려 노는 경우 두세 명씩 짝을 지 어 대화를 하기보다는 전체가 둘러앉아 노래하며 즐기는 행태도 그 예이다.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대인 관계는 그냥 아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아니라 연고에 의해 서 연결되는 내(內)집단 성원과의 관계이다. 이것은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단절되는 관 ’ 계가 아니라, 연줄로 연결되는 공통의 생활 공간에서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정이라는 심적 자원을 주고받으며 정을 쌓아가는 교류이다.
1.한국 사람들의 관계 맺기에 영향을 가장 많이 끼치는 것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2. 위 글에서 '우리' 라는 느낌을 강화시키는 한국 사람들의 집단적인 행위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