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이 도시는 세수를 안 한다
오늘도 세수를 안한다이 도시는
오늘도 먼지로 아침 化粧을 시작한다이 도시는
나는 초롱초롱한 눈들이 보고 싶다나는 쌩얼의 이쁜 아가씨가 보고 싶다나는 냇물에 미역감고 생살이 눈부신 아낙네들이 보고 싶다
그러나 이제 이 도시는씻을 냇물이 없나보다비출 거울이 없나보다
이 화장끼 짙은 도시그 촌스럽고 상스런 면상에그래도 욕심만은 칼처럼 번득인다
오늘도 이 도시는세수도 안 하고아침부터 먹어 댄다싸 댄다
어획
나는 해변에 그물을 쳐 바람을 잡고 있습니다싱싱한 바닷고기보다 더 싱싱한 바람을 잡고 있습니다
나는 바람이 좋습니다나는 바람에 뚫리는 것이 좋습니다
나는 당신을 가지는 것 보다 놓히는 것이 좋습니다나는 당신의 아름다운 알몸 못지않게 당신의 아름다운 알뭄의 자유를 사랑합니다
이세상 가장 아름다운 것은 자유임을 나는 압니다
나는 해변에서 그대를 바람처럼 해빛처럼 만져보고 안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나는 당신을 잡는 그물입니다당신은 나를 잡는 바람입니다
해변일기
그대는 햇빛에 묻히고나는 그대의 눈빛에 묻입니다
바람은 숲을 움직이고그대의 눈빛은 나를 움직입니다
비둘기의 하얀 어깨 위에햇살이 눈부십니다
그대의 까만 눈동자엔무수한 밤하늘의 별들이 반짝입니다
그대는 가장 찬란한 정오입니다그대는 가장 깊은 밤하늘입니다
들에서 부르는 노래
나는 노래와 여자와
그리고 들에서 땀흘리는 일을 사랑했다아무도 없는 들에서나는 실로 많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성실하게 자라는 풀과 곡식들그리고 나처럼 잘 걷는물과 구름과 바람들
아침부터 걸어정오쯤은 교외의 넓은 들과 만나는 일을나는 사랑했다
그곳엔 고요의 소리가기다리는 여자처럼 숨쉬고 있었다사슴의 눈망울처럼나를 커다랗게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그쯤에서
멀리 도시 쪽을 돌아보는 일을 사랑했다
교외에 우뚝 서서나무처럼 무성한 눈길로도시를 성냥갑으로 볼 수 있었고누구의 오또기로 볼 수도 있었다
나는 들로 나가조금 미치는 일과조금 외로운 일과그리고 없는 여자를 멀리 그리워하는 일과혼자 목이 쉬게 실컷 노래 부르는 일을사랑했다
미련
냇물에 금방 머리 감고아직 빗어 쪽지지 않은 여인의 머리칼
비 그은 여름 밤
이제여명은 창가에 비껴 서서
그 쑥향의 검은 머리칼을 어깨 뒤로 빗어 넘기며
하얀 젖가슴을 드러내고 있다
비 그은 여름 밤을취하고 일어나사랑이 있는 행각승 하나가남의 여자 규방에 앉아떠날 길을 잊고 있다
소게(小憩)
때먼지에 찌든 옷가지들어쩌다 빨아냇가 두 세 그루 나무가지에넋처럼 널어놓고
먼 길잠시 잊고조약돌처럼발가벗고
볕을 쬔다
하얀 것은 하얗게 젖가슴 내놓고빨간 것은 빨갛게 입술 내밀고까만 것은 까맣게 머리칼 날리며빨래들도 볕을 쬔다
오랜만의 제모습들이다
산새가 발치까지 와서유창하게 지껄인다그놈이경상도 사투리에 古漢語까지 섞어도연명에 대해 지껄이고 있음을나는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노숙(露宿)
눈물많은 나의 들아이젠 눈물이라 하지말자이슬이라 하자
나는 이슬로 목걸이 한너의 풀 한 포기 보다더 행복하지도더 슬프지도 않다
나는 지금이 세상 가장 긴 밤을풀 한 포기로 노숙하며모든 이슬을별이라 명명하고 있다모든 아픔을꽃이라 부르고 있다
버드나무
복숭아 밭 저쪽 언덕아무 것도 맺지않는 버드나무
황금보다 눈부신가벼움을 가벼움을
無師自通하는 무희바람과는 천생 배필
쉰 일흔 늙을지라도머리칼이 소녀같이 치렁치렁한
寒士의 이쁜 딸시인과는 천생 배필
비가(悲歌)
오늘도한사코 아무 일 없다
벼짚 가마니 같은 하루감자알 같은 일상헛간
온종일 씹는 종자새김질하는 종자
뒷간에 부릴 것 외는다시 신기할 것 없는
아 아 오늘도 한사코아무 일 없다
겨울 철새
마른 겨울눈은 오다 말고
같이 누울 침대도 없건만어젯밤도 꿈속으로 찾아드는초생달하이힐
내가 사는 도시는 내가 사는 도시에 없어도이른 봄을 한 아름 꺽어다하얗게 꽂으려빈 술병파란 하늘처럼 창턱에 세워두고
새별 눈들 죄다 실려간텅 빈 겨울 거리 위에 앉아
강남 갔을 철새 한 마리는강남 못간 철새 한 마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