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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의술이 될 수 있을까>
《语言也能成为医术吗》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왔다. 검진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데 어머니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我带母亲去了趟医院,结束治疗后回家的路上,母亲很沉重地开口说道,
"이젠 화장만으론 주름을 감출 수 없구나.."
“现在只用化妆是藏不住脸上的皱纹了啊……
시간은 공평한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나이가 들수록 성급하게 흐르다. 시간은 특히 부모라는 존재에게 가혹한 형벌을 가한다. 부모 얼굴에 깊은 주름을 보태고 부모의 머리카락에 흰 눈을 뿌리는 주범은 세월이다.
岁月看似公平,却也并非总是如此。年龄越大,时光越是匆匆。对于父母来说,岁月尤其残酷。那在父母脸庞刻下深纹,在父母发间泼洒白雪的,便是这无声流走的岁月。
병원에 들를 때마다 깨닫는 게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저머다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공간에선 언어가 꽤 밀도 있게 전달된다는 사실이다. 특히 말기 암 환자가 돌봄을 받는 호스피스 병동에선 말 한마디의 값어치와 무게가 어마어마하다.
每次去医院我都会体悟到一个事实:在生与死的挣扎之间,在人们奋力抗争的战斗之中,语言,拥有难以形容的穿透力。特别是在癌症晚期患者疗养的病房中,一句话的价值与力量,超乎想象。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절박한 상황에서 눈과 귀로 받아들이는 언어는,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돌멩이처럼 크고 작은 동심원을 그리며 마음 깊숙이 퍼져 나가기 마련이니까.
这也理所当然,因为在水深火热之中,我们用眼睛看到,用耳朵听到的语言,就像抛入平静水面的石子,划出或大或小的圈纹,一圈一圈地荡向我们的内心深处。
몇 해 전 일이다. 일산에 있는 병원에서 어머니가 수술을 받았다. 진료 과정은 다른 병원과 별 차이가 없었는데 의료진이 환자를 부르는 호칭이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是几年前的事了,母亲在日山的一所医院接受了手术,这里的治疗过程和别的医院大同小异,但医护人员称呼患者的方式却让我多少有些意外。
한 번은 나이 지긋한 의사가 회진차 병실에 들어왔는데 그는 팔순을 훌쩍 넘긴 환자를 대할 때도 "환자" 혹은 "어르신"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박 원사님""김 여사님"하고 인사를 건넸다.
有一次,一位上了年纪的医生来查房,在和年过八旬的患者打招呼时,他并没有称其为“患者”或者“老人家”,而是用“朴院士“”金女士“来代替。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소박한 의문이 뭉게구름처럼 솟아 올랐다. 음, 이유가 뭘까. 왜 저렇게 부르는 걸까.
看到这一幕的我当时心里升起了一团小小的疑云,恩,这样称呼的理由到底是什么呢。
어머니가 퇴원하는 날 담당 의사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내가 "환자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으시던데요?"라고 묻자 그는 "그게 궁금하셨어요?"하고 되물었다. 의사는 별걸 다 물어본다는 투로 심드렁하게 대답했지만, 난 그의 설명을 몇 번이고 되씹어 음미했다.
母亲出院的那天我刚好有机会能和主治医师交谈,我问道“您好像并不用患者这个称呼?", 医生反问我说”您好奇这个呀?“,接下来医生的回答云淡风轻,就像这再寻常不过,但我却反复品味他的回答,一遍又一遍。
"환자에서 환이 아플 "환"이 잖아요, 자꾸 환자라고 하면 더 아파요."
“对于患者来说,”患“这个字就是病痛的意思,总说'患者‘的话他就更加难受了。”
"아..."
“啊……”
"게다가 '할머니' '할아버지' 같은 호칭 싫어하는 분도 많아요, 그래서 은퇴 전 직함을 불러드리죠. 그러면 병마와 싸우려는 의지를 더 굳게 다지시는 것 같아요. 건강하게 일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바람이 가슴 한쪽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변원에서는 사람의 말 한마디가 의술이 될 수도 있어요."
“而且很多人也不喜欢别人叫自己’爷爷‘ ’奶奶‘,所以我才用他们退休前的职衔来称呼他们,我觉得这样好像更能激发出他们和病魔战斗的意志,也许是因为这样的称呼让他们心生期望,希望自己能回到健康工作时的那种状态吧。在医院里,有时候人们的一句话也能变成救命的医术。“
注:本文摘自韩国出版社말글터出版的이기주 <언어의 온도>,仅供个人练笔之用,查看全文请购买正版书籍。